Like caffeine

caffeineo.egloos.com


포토로그


또 다시 한줄기의 빛처럼. 단편글































 밤은 추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소라면 권태에 찌들어 시덥잖은 의미로 와닿았을 그 밤거리가 오늘 만큼은 몽환적으로, 또 아름답게 느껴졌다. 주홍빛의 가로등 불빛은 비가 그친지 얼마 안 돼 습기를 머금은 공기 중에 뿌옇게 산란했고, 그 모습이 마냥 꿈과 같이 아름답게 느껴져 하릴 없이 밤하늘을 응시했던 것도 같다.
 집에 도착할 즈음, 계속 꺾여있던 고개 탓에 뒷목이 뻐근해져 왔다.















 
 굼뜨게 닫혔다가 열리는 눈꺼풀로 도어락을 한동안 내려보다가 그제서야 느리게 부상하듯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오른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 처음 입력했을 땐 손이 엇나가 틀렸고, 두번째로 입력했을 땐 맞게 입력했다고 생각했는데도 틀렸다. 세번째로 입력했을 때엔 혹시나 싶어 예전에 쓰던, 지금은 낡디 낡은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역시나 기계음은 단호한 거절의사만을 나타냈다.
 다섯번째에 이른 끈질긴 시도 끝에 문이 열렸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잠긴 도어락을 해제한 것이 자신이라 기정사실화했다. 술에 취해 단순해져버린 그녀의 머리는 그것 외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블레이크는 밤 두 시가 다 돼가는 늦은 시간에 대뜸 울리기 시작한 도어락 비밀번호의 불안한 입력음이 수차례 반복되자 하는 수 없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설왕설래하던 정신을 붙들었다. 그나마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조명을 끄고 눈을 감은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잠을 억지로 깨버린 특유의 짜증은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늦은 시간에 이렇게 예의범절 없이 자기 집 도어락을 열었다 닫았다, 비밀번호를 멋대로 입력해대는는 문 앞의 정체 모를 사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무척이나 불쾌한 종류의 것이었다.
 현관문 앞에 이르러서야 지금 입고 있는 게 안이 비칠 만큼 얄팍한 슬립 한 장 뿐이란 걸 깨달았지만, 상대가 누구든간에 열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문 중앙의 작은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본 그녀는 결국 짧은 한숨과 함께 그 생각을 철회해버리고 말았다.
 현관문에서 멀지 않은 방 안의 옷걸이에 가 아무 옷 하나를 집어들었다. 살짝 큰 검은색 카디건이었다. 서두르지 않게 입고선 문을 열었다.
 "…."
 블레이크는 무언가를 말하려던 입술을 한번 달싹였다가, 다시 닫아버렸다.
 도어락을 가지고 그렇게나 장난 아닌 장난을 쳐대던 여인 또한 유달리 할말이 없는지 침묵할 뿐이었다. 블레이크는 살짝 차가운 밤공기 때문에 몸이 조금 떨렸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일 분은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긴 시간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한마디 말도 없이 서로의 시선만이 맞닿아 그 어느쪽도 피하려 하지 않는 이 어색하고도 청승맞은 상황에선 더더욱 그랬다.
 블레이크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열려있는 현관문의 왼쪽 문틀에 몸을 삐딱하게 기대었다.
 "양, 지금 몇시인 줄 알아?"
 조금 기다렸지만 그녀에게 대답은 없었고, 표정변화도 없었다.
 블레이크는 그녀의 안면이 붉게 상기돼있음을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또 마셨나보네. 술.
 "두 시가 넘었어."
 "응."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곧이 곧대로 이곳을 응시해오는 그녀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져 블레이크는 괜히 신고있던 슬리퍼를 고쳐 신는 척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알면 돌아가."
 "……."
 "네 동생 걱정시키지 말고."
 그렇게 말한 그녀의 유려한 손이 현관문의 손잡이를 살며시 붙들었다.
 어찌할 틈도 없이, 어찌해볼 틈도 없이 문은 곧 닫히고 말리라. 양은 문을 잡고 언제까지고 버티어볼까 라는 유치한 생각도 했지만 결국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문은 그렇게 닫혔고, 그녀는 그렇게 눈 앞에서 사라졌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양은 한 시간이 넘도록 그 자리를 뜨질 못했다.
 술에 취해 몸은 따뜻했고, 추위는 감각이 아닌 이성과 논리로만 와닿았다.
 어둡게 암전한 주홍빛으로 물든 겨울밤. 어느새 이 길고 외로운 새벽엔 눈이 내렸지만 양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시종일관, 웃는 모습이 그 누구보다 예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온기와 체취를 품고있을 닫힌 문 안을 향해 있었기에 다른 데엔 조금의 신경도 할애할 수가 없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그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또 다시 한줄기의 빛처럼 내게 와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밤은 여전히, 길고 어두웠다.






RWBY GL 팬픽 RWBY팬픽 백합물 백합소설 GL소설

덧글

댓글 입력 영역